국민대학교 유라시아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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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Date : 2009/12/22  Hit : 6241  
 스크린이 사랑한 러시아 문학 - 이명현
 

스크린이 사랑한 러시아 문학

이명현(고려대 러시아 CIS연구소)

  

혹시 러시아 문학이 관념적이고 형이상학적이라고 생각했다면 그건 오산이다. 러시아 문학 작품을 원작으로 하는 일련의 ‘각색영화’들을 보게 되면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심오한 사상이나 복잡한 심리를 기술한 러시아의 위대한 문학 작품이 스크린 위의 탁월한 영상 이미지로 재현된 것을 볼 때, 책의 페이지를 빼곡히 채우고 있는 활자들이 어쩌면 색채와 조형의 원소일지도 모른다는 착각이 든다. “문학을 기본적인 요소로 축소시키게 되면 결국 한 가지 목적, 즉 말로써 이미지를 전달하는 것에 귀결된다”고 허버트 리드는 말했다. ‘인간의 뇌 속에 있는 스크린에다 움직이는 사물과 사건을 투사하는 것’이 ‘호메로스와 셰익스피어, 제임스 조이스, 어니스트 헤밍웨이에 이르기까지 모든 위대한 문학의 정의’라는 것이다. 리드의 주장은 백퍼센트의 진실은 아닐지언정, 러시아 문학의 경우라면, 절반 이상의 진실이 된다.

러시아 문학이 영화화된 과정을 추적하다보면, 자동으로 러시아 영화사의 궤적을 그리게 된다. 러시아 영화의 아버지격인 한존꼬프가 독립영화사를 차려서 문학작품을 토대로 예술영화를 찍기 시작한 1908년부터, 고골의 <타라스 불바>가 초대형 블록버스터로 영화화된 2009년에 이르기까지, 러시아 영화사 백년은 곧 각색영화사 일 세기였던 셈이다. 문학의 시대가 저물었다고들 하지만 러시아 문학은 영화를 통해서 끊임없이 갱생하며, 나아가 영생을 누릴 가능성마저 보인다. 문학도로서는 조금 자조적인 표현일지 모르나, (러시아) 영화가 죽지 않는 한 아마 (러시아) 문학도 죽지 않을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그 유명한 에이젠슈테인의 몽타주 개념 역시 일본의 하이쿠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었다. “앙상한 나무 가지에 / 까마귀 홀로 앉았노라 / 가을 해 질 무렵에”, 라는 시구가 에이젠슈테인에게는 서로 다른 세 가지 숏의 ‘충돌’로 읽혔다. 그러고 보니 과연 문학은 궁극적으로 시각화를 지향한다는 것을 저 짤막한 시구가 역설하는 것만 같다.

영화적 상상력의 모태가 문학임을 주장했던 에이젠슈테인이 몽타주의 교과서인 <전함 포템킨>을 세상에 선보인 후 사람들은 ‘러시아에 더 이상(의) 영화란 없다’고 섣부르게단정했다. 그런 예상을 깨고 러시아에 영화가 ‘또 있음’을 확인시켜준 것은 푸도브킨의 <어머니>이다. 고리키의 소설은 푸도브킨[우측 사진]의 강렬하고 투박한 영상으로 다시 태어났다. 여성적이고 우아하게 보이고 싶어 하는 여배우 베라 바라놉스카야를 잘 다독거려서 왜소하고 늙고 추레한 ‘어머니’로 변모시킨 거장 푸도브킨은 소설 속에 수 페이지에 걸쳐 묘사된 공장촌의 암담한 풍경을 기막힌 선술집 씬으로 압축시켰다. 싸구려 술과 안주, 땀과 담배 냄새, 손풍금소리, 고함소리가 진동하는 더럽고 엽기적인 선술집 장면은 고리끼의 사실주의적인 필체가 표현주의적이고 인상주의적인 영상으로 번역되는 범례라고 할 수 있다.

문학을 통해서 영화의 내공을 키웠던 20년대 아방가르드들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가 맹위를 떨친 스탈린 시대로 접어들어 속물과 퇴폐로 취급당한다. 그리고 러시아 영화는 문학과 함께 침체되고 얼어붙는다. 암울한 스탈린 시대가 마침내 막을 내리고 해빙이 되자 러시아 영화는 고전 문학의 영화화를 통해서 재기하고 부흥한다. 그 선두에 놓인 작품이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1960)이다.

평범한 소시민 남녀의 범상하고 반복되는 일상 속에 인간 운명의 위대한 비밀이 담겨있음을 말해주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운명은 익명성을 벗어날 수 없음을 암시하는 체홉의 단편은 로맨틱한 멜로드라마로 각색되어 해빙을 맞이한 소비에트 러시아인들의 감성을 자극했다. 첫 번째 정사를 치르고 한바탕 눈물과 회환, 위로와 독려의 의식마저 치르고 난 남녀는 얄타 해변이 내다보이는 언덕 위 벤치에 나란히 앉아 생각에 잠긴다. “얄타 섬이 아침안개 사이로 희미하게 보였고, 산봉우리마다 하얀 구름이 꼼짝 않고 걸려 있었다. 나뭇잎들도 소리 하나 내지 않았고 매미만 울어대었다. 아래로부터 들려오는 단조로운 둔탁한 파도소리는 인간들을 기다리는 평온, 영원한 안식에 대해 말해주고 있었다. 여기에 얄타나 오레안다가 없었을 때도 바다는 이렇게 소리 냈을 것이고 지금도 소리 내고 있고 또 우리가 죽은 후에도 마찬가지로 무심하고 둔탁하게 소리 낼 것이다. 아마도 이 한결같음 속에, 인간 개개인의 삶과 죽음에 대한 완전한 무관심 속에, 아마도 우리의 영원한 구원, 지상의 삶의 끊임없는 지속과 완성의 저당물이 감추어져 있을 것이다.” 남녀의 속되고 소심한 로맨스 뒤에 펼쳐지는 이 장엄한 얄타의 정경은 단편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의 백미라고 할 만한 대목이다. 영화에서도 역시 이 대목은 최고의 장면으로 꼽을 수 있다. 감독 이오시프 헤이피츠가 이 장면에 합당한 풍광을 찍기 위해 얄타의 언덕에서 하늘과 바다를 조망하며 얼마나 공을 들였을지 짐작이 간다. 그는 체홉이 언어로 표현한 상념을 시각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언덕길을 순례하듯 지나다가 기도하는 촌부의 형상을 삽입했다. 그의 모습이 두 남녀 주인공과 해빙기 소비에트 러시아 관객들에게 얼마나 위안이 되었을까.

그밖에도 고전을 각색한 수많은 영화들이 60년대와 70년대에 제작되었다. 그중에는 고골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소비에트 최초의 공포영화 <비>(1967)도 있다. 영화를 찍던 여배우가 병에 걸리는 등 온갖 미스테리한 풍문에 휩싸이기도 했던 영화 <비>는 문학의 충실한 영화화가 결과적으로는 영상적 테크닉의 진전을 가져오고, 영화의 시각적 효과(볼거리)를 강화시키는 것으로 귀결되는 좋은 예이다. 그렇다고 이 영화의 테크닉이 오늘날의 개념으로 본격 호러물 수준은 아니다. 그것은 동화영화(필름-스까즈까) 장르로 분류되는 수준이다.

70~80년대는 타르콥스키[좌측 사진]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 짧은 지면에서 짧은 지식으로 그의 영화세계를 거론하는 것은 너무 벅찬 일이니, <이반의 어린시절>, <솔라리스>, <잠입자> 등 그가 찍은 영화의 절반가량이 문학 작품을 원작으로 한다는 것만 짚고 넘어가자.

소련의 해체 이후 러시아 영화의 사망선고가 내려졌던 90년대를 지나 2000년대의 새로운 국면을 살펴보자. <워치> 시리즈, <터키 갬빗> 그리고 서두에서 언급한 <타라스 불바> - 그야말로 포스트소비에트 시대 러시아영화의 새 장을 연 블록버스터들이 줄줄이 선을 보였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모두 각색영화라는 사실이다. <워치> 시리즈의 첫 번째인 <나이트 워치>의 도입부 화면에는 1992년이라는 시간적 배경이 명시된다. 그 후로 12년이 지난 2004년, 어린 소년 예고르가 코피를 흘리면서 하얗고 조그만 알몸을 내밀어 수영장 물속을 빠져나온다. 이 장면은 원작 <나이트 워치>에는 자세히 묘사된바 없는 각색된 씬으로서, 포스트소비에트 글로벌 시대의 신종 러시아인의 탄생을 상징한다. 이 새로운 세대는 이제 16-17세기 카자크의 영웅담인 <타라스 불바>의 2009년 버전을 최첨단 시설을 갖춘 상영관에서 관람하는 관객이 되었다. 영웅적인 러시아 신화의 부활을 꿈꾸게 하는 영화 <타라스 불바>는 고골의 민족주의를 오늘에 되살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고골이 지향하고 묘사했던 초월적인 영적 경지는 각색해내지 못했다. 그 경지가 영화화된다면, 아마도 그 때는 러시아 영화가 또 다른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그 때 러시아 문학도 또 다른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 사진자료 출처:

http://www.ozon.ru/context/detail/id/4510539/
http://www.ozon.ru/context/detail/id/4424714/
http://www.russkoekino.ru/publ/publ-0051.shtml
http://ec-dejavu.net/t-2/andrei_tarkovsky_photos.html

 

 

<인터넷 칼럼>에 게재된 내용은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으로

유라시아 연구소의 공식견해가 아님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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